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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09 동유럽여행

동유럽 단독배낭여행기 마지막 정리


얼마 후, 네덜란드 땅이 보였다. 키예프를 가기 전에 보였던 네덜란드 땅과 베를린을 떠난 후에 보였던 네덜란드 땅은 사뭇 느낌이 틀렸다.

그 때는 두근거리면서도 설레이고 신이 났는데 지금은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착륙했다. 10여일만에 다시 오는 스키폴 공항이었지만 느낌은 틀렸다. 다시 10일전의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호스텔을 20분만에 제대로 찾고 밤거리의 사진을 많이 찍고 감흥을 즐기다가 키예프로 여유롭게 떠나는 건데...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루지 못했기에 지금의 본인이 있는 것이다.

 

 

 

게이트에서 내린 후 먼저 출구부터 찾았다. 입국심사대로 가서 입국도장을 찍고 잠시나마 중앙역 광장만 짧게 관광하고 오려고 했었는데 출구를 잘못 나가서 공항을 다이렉트로 나가게 되었다. 혹시나 겁이 덜컥 났다.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비상벨이 막 울렸다. 사람이 올 때 마다 계속 이런 짓을 반복하다 보니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만 같아 민망해서 이 짓을 그만두고 옆의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티켓을 제시하며 출구를 잘못나온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서 다시 윗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아울러 본인은 남은시간이나마 관광을 할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가 말하길 체류시간이 6시간이상이 아니면 관광이 불가능하다고 하며 올라가보라고 한다. 일단은 이렇게 나왔으니 중앙역만 대충 훑어보고 갈까... 잠시 공항 밖으로 나왔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하지만 그 직원이 관광을 할 수 없다고 경고(?)를 해서 관광을 하려니 이러다가 큰 화를 당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냥 과감하게 중앙역 주변만 잠깐 관광하고 올까.... 아니면 들어가서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을까... 고심끝에 본인은 공항에 다시 들어가서 대기하기로 했다. 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 날의 네덜란드 날씨는 관광을 하기에 별로 좋지 않은 날씨였다. 우선, 2층의 출국심사대로 들어갔다. 드디어 본인차례가 왔다. 출국심사위원은 출국도장을 찍어주더니 다음에 올 때는 비자를 발급받고 오라는 농담을 던지고 본인을 보냈다. 일단은 면세점으로 가서 쇼핑할 거라도 있으면 쇼핑하기로 했다.

한쪽 편에는 주류가 진열된 게 보였다.

 

 

 

 

 

그리고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면세점으로 갔다. 캠코더 및 카메라를 취급하는 코너에서는 DSLR카메라를 광고하고 있는 한 금발의 여직원이 보였다. 여기서 약간의 장난끼가 발동했다. 본인은 그 언냐에게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본인이 그 언냐에게 사진을 이쁘게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면세점을 쭉 둘러보았다.

 

 

사진속의 츄파춥스 사탕은 크기가 사람머리만했다.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마침 쑤타오누나와 마주쳤다. 쑤타오누나 역시 환승때문에 대기하고 있었다. 쑤타오누나는 4시 30분에 비행기 시각이라고 했다. 본인은 쑤타오누나와 면세점에서 쇼핑하며 심심함을 달래기로 했다. 본인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긴 밀크헤즐넛초컬릿과 소년부 주일학교 분반아이들에게 줄 꼬마곰젤리를 샀다. 쇼핑을 다 마치고 본인은 쑤타오누나가 환승하는 게이트까지 같이갔다. 확인하고 본인 역시 환승할 게이트를 찾고 심심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먼저 환승할 게이트를 찾아내고 다시 면세점으로 찾아갔다. 면세점의 물건들은 식상한 것도 있었고 신기한 것도 있었다. 여러가지 구경하면서 오고 다시 쑤타오누나한테로 갔다. 4시 30분쯤 되자 중국 베이징행 비행기 보딩패스시간이 됐다. 본인은 쑤타오누나와 악수하면서 다음에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을 기약하며 연락하겠노라고 했다. 쑤타오누나를 중국으로 보내고 본인은 다시 면세점 구경을 갔다.

 


 

 

 

 

잠시 감상 좀 하고 내려가서 계속 돌아다녔다. 주류코너에 마침 본인의 시선을 끄는 주류가 진열되있었다.

 

 

 

이젠 보딩패스시간이 얼마 안남은듯 하다. 지정된 게이트로 가서 대기했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승객의 70%정도가 한국인이었다. 보안검색받고 한 얼마동안 할 짓 없이 음악을 들으며 기다렸다.

 

 

 

잠시 후, 한국행 비행기가 왔다. 이제는 모든 추억을 인생의 책갈피에다 끼워두고 떠나야 할 시간이다. 비행기로 들어갈 때 신문을 챙겨갔다. 지정된 자리로 갔는데 자리는 상당히 안좋았다. 창과 창 사이에 위치해있는데다 날개 중심부에 위치한 자리라 창 밖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리였다. 이륙하기 전에 신문을 잠깐 훑어봤다.

 

가속화된 경제악화와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대해 다룬 기사들이 메인을 이루었다. 사교육에 대해 거세게 비판을 하는 기사도 실려있었다. 크리스찬들은 김수환 추기경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런 선행 하나는 본받아야 한다. 요즘은 아직도 이기적이고 바르지 못한 크리스찬들이 많아서 기독교가 욕을 많이 먹고 있어 참 안타깝기만 했다.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 중의 다수는 '모순'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못된 크리스찬들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하늘은 어느 새 칠흑같은 어둠에 묻히고 비행기는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그 자리에서 쉬고 싶었다. 몸도 너무 많이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있었다. 그 어느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쉬고 싶었다.

 

 

 

 

기내식을 다 먹고 음악을 들으며 책 보면서 좀 쉬다가 이내 졸려서 잠에 들어버렸다.

 

깨어나서 창문을 한번 열어보았다. 해가 떠있는 아침이었다. 근데 현 위치는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간식으로 라면이라도 먹으려고 잠시 스튜어디스 서비스실로 갔는데 라면은 승객들이 다 가져가서 없었다. 아쉬운대로 본인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아침식사가 나왔다.

 

 

 

아침을 다 먹고 음악을 들으며 이때까지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쌓았던 정도 다시한번 되돌아 보았다.

 

먼저 네덜란드 사람들은 사상이 개방적이었고 시민들 대부분이 영어를 무섭게 잘해서 본인의 영어실력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the Shelter호스텔을 제외하고 한국의 정서와 거의 동떨어진 아주 열려있는 곳이었다. 너무 열려있는 곳이다 보니까 동성연애자간의 결혼, 매춘, 소량의 마약이 합법화 되어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때도 생각했다. 길 잃고 해메서 비에 다 젖고 마음 또한 불안 속에서 헤매고 있었을 때 경찰관의 도움으로 찾은 'the Christian Shelter' 호스텔은 본인이 들렀던 숙박업소에서 가장 은혜스러웠던 곳이었으며 그야말로 진짜 '기독교인의 피난처'였다. 비가 계속 내리는 한산한 거리 한가운데서 마약중독자와 잘못 마주쳐서 맞아죽을지도 모르던 본인은 계속 두려움에 떨며 거리를 헤매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피난처'로 인도해주셨고 평안을 허락하셨다. 평소에 체력이 약해서 늦잠을 잘 자는 본인은 밤 11시쯤 되서야 겨우 잠들었는데 다음날 새벽 6시쯤에 일어났을 때, 피로가 거짓말처럼 다 사라진 작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동양인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좀 있다는 얘기에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는 좀 버거웠다. 그러나 그들은 성격이 개방적이고 성품이 따뜻한지라 한 번 친해지면 금방 친해지는 정이 많은 민족들이었다. 공무원들은 차갑고 썩어빠졌지만 주민들은 한국인들보다 더 순했을 뿐더러 친절했다. 안나, 이리나, 올가, 옥산나, 옥산나와 같이 다니던 이름이 생각 안 나는 금발의 처자, 따냐, 그리고 the Kosmonuat 호스텔 사람들. 이들은 만난지 얼마 되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과 금방 친해졌으며 성품이 상당히 순한 사람들이었다. 리보프의 the Kosmonaut 호스텔은 겉보기에는 뭐 별거 없을것 같지만 본인이 들렀던 숙박업소 중에서 가장 정이 많이 갔던 곳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인의 따뜻한 성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보다 더 안정적이고 생활수준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곳이었다. 치안 또한 안정적이고 강력범죄도 우크라이나에 비해 적은편이기에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는 우크라이나보다 한층 더 수월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비해 개인주의적이라 금방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곳은 사람들의 정 보다는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본인이 묵었던 오키도키호스텔은 본인이 들렀던 숙박업소 중에서 가장 잘 꾸며져 있었고 아기자기해서 젊고 감성적인 여자들이 묵고 가기에는 아주 최고인 곳이었지만 우크라이나 만큼 직원들의 따뜻한 성품을 느낄 수가 없어서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그나마 한 친절하고 붙임성 있는 직원언냐덕분에 부정적인 인식이 전환되었지만...

 

독일은 폴란드보다 더 안정적이고 사람들도 대체로 친절하며 영어실력도 훨 낫고 강력범죄 또한 거의 없는 선진국이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적 성격이라 친해지기가 쉽지 않아서 그들에 대한 정은 별로 없었다. 잘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에는 크게 감탄을 했지만 독일에서 사귄 현지인은 안타깝게도 한 명도 없었을 뿐더러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찍은 현지인들도 거의 없었다.

 

어느 새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날씨는 꽤 좋았다. 이것으로써 본인의 단독배낭여행은 모두 끝났다.

12박 13일동안 네덜란드를 제외한 치안이 좋지 않은 곳만 혼자서 다니는 미친 짓을 했었다.(사실은 베를린도 독일에서 가장 치안이 안 좋은 곳으로 꼽힌 곳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카페의 '오리수염' 주인장님 말대로 혼자서 여행하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었다. 본인은 그 미친 짓을 한 번 하고 왔었다. 그러고도 다친 데 한 군데 없이 몸성히 돌아온 것은 큰 기적이자 큰 다행이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간 것에 대해서는 후회없었다. 왜냐면 본인은 러시아 및 CIS국가에 애착을 갖고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가장 오래 체류를 했고 본인에게 있어서는 우크라이나가 가장 정이 많은 곳이었다.

 

12박 13일을 여행하는 동안 즐거움이 있었고 낭만도 있었고 로맨스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고 짜증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상처도 받았지만 이 여행은 본인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으로써 12박 13일의 킵챠크 한국 단독배낭여행기(Chinggis Khaan Power Trip)를 모두 마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