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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09 동유럽여행

독일(Germany) 단독배낭여행기 Part 2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몸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하룻밤 사이에 관광객이 무려 대 여섯명씩이나 들어와있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나 불안해서 급히 정신을 차리고 프론트로 내려가봤는데 다행히도 시계는 아침 7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간단하게 씻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필요한 짐만 싸고 크로스백을 매고 독일 hbf 중앙역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밖에는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다리는 아직까지도 아팠다. 걸을 때 마다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계속 오는 것이었다. 그 아픈 다리를 이끌고 hbf역을 향해 걸어갔다.

 

 

 

 

 

 

 

 

베를린 hbf역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아직 8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그는 분명히 베를린 hbf 안네데스크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기다리면서도 좀 찜찜한 마음은 여전했다. 만일 그가 약속대로 온다면 아침을 같이먹고 베를린 관광 같이하기로 하고 오지 않을 경우, 한국 대사관으로 가서 그의 신상정보를 넘겨주고 신고하기로 했다.

8시 40분쯤 되었을 때, 본인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러나 전화기는 꺼졌는지 없는 번호인지 계속 독일어의 자동멘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본인은 9시 30분까지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두 곳의 안네데스크를 5~10분의 주기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그러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배는 너무나도 고팠다. 결과적으로 본인은 그새끼에게 우리돈으로 약 10만원을 뜯겼을 뿐만 아니라 그새끼때문에 소금광산도 구경못하고 바로 베를린으로 가야만 했던게 열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딱 한가지 밖에 없었다. 일단은 배가 고픈대로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러 갔다. 아침은 계란버거와 콜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계란버거 €1.2, 총 €2.2 든 듯함)

 

 

 

아침을 먹고나서 한국대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 마다 오른 쪽 무릎은 계속 아팠다. 그리고 눈은 너무 많이 쌓여서 신발과 바지는 또다시 젖었다. 국회의사당 쪽의 길로 들어가서 한 15~20분정도 헤매다가 간신히 6월 17일의 거리를 찾았다. 6월 17일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길었다. 본인은 오른다리를 절면서 6월 17일의 거리를 계속해서 걸어갔다. 마침 한 처자도 그 거리를 걷고 있었다. 거의 옆에서 동행한 듯이 같이 걸었지만 그 처자는 본인에게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도 않고 자기 갈 길만 갔다. 다리를 절면서 갔는데도 그녀는 종종 모른척이었다.

 

여기서 잠깐!!

전편에도 언급했지만 독일인들은 대체로 남의 일에 관심없는 편이다!!

 

얼만큼 걸었을까... 눈앞에 높은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을 살짝 봤더니 전승기념탑이었다.

 

 

 

6월 17일 거리와 전승기념탑

 

일단은 사진 대충 찍고 계속해서 한국대사관을 향해 걷고 걸었다. 얼만큼 걸었을까... 한국대사관이 보였다. 그러나 주 독일 한국대사관은 철로 된 대문으로 굳게 잠겨있었다. 일단 공중전화기를 찾아서 한국영사부에 전화해서 사정을 잘 얘기한 다음에 찾아간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대사관 옆의 영사관으로 갔다. 안에는 두 명의 나이든 여직원들이 있었다. 본인은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들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왜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냐면서 다그쳤고 이 일은 독일이 아닌 폴란드에서 일어난 일인데다 금액 또한 많지 않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접수를 받지 않을거라고 했다.(진짜 그들이 본인을 다그쳐도 쌀 짓을 했다...) 일단 본인은 여권과 그의 신상정보를 제출했고 진술서와 계좌(씨티은행)도 써서 제출했다. 그들은 '안드라스'의 정보를 접수했고 그의 연락처에 연락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전화기가 꺼져있어서 받지않는다며 하루에 몇 번씩 통화를 시도해보고 그에게 연락이 오거나 계속해서 연락이 없다면 이메일로 근황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현재 숙박지를 알려주자 그들은 여기서 특정 번호의 버스(가이드북에 나와있는데 그걸 수원집에다 둬서 번호를 까먹었음...ㅠㅠ)를 타면 바로 베를린 hbf역으로 갈 수 있을거라고 일러줬다. 일단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가느니 베를린에서 명물에 속하는 전승기념탑을 관광하고 가기로 했다. 지하도를 통해서 전승기념탑으로 갔다. 그리고 안으로 입성!

매표소에는 한 흑인 여직원이 지키고 있었다.(국적이 독일인지 직업비자를 받고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음;) 일단 본인은 신분을 밝히고 국제학생증을 제시했다. 학생할인 받아서 €1.5정도 내고 안으로 입장!

 

 

 

먼저 가 본곳은 전승기념탑 역사와 몇개의 소장품이 놓여진 곳이었다.

간단한 구경을 마치고 탑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탑을 올라가는 길에 벽에는 여러나라 언어의 낙서가 지저분하게 되어있었다.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중간에 출구가 나왔다. 일단 나와서 구경 좀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밖에는 눈이 오고 바람이 휘몰아쳐서인지 앞도 잘 보이지 않았고 사진도 그렇게 좋지않게 나온 듯 하다.

 

 

 

대충 둘러보고 위로 계속 올라갔다. 벽에는 군데군데 낙서가 있었다. 이 중에서 한국어로 된 낙서도 볼 수 있었다.

 

 

전승기념탑을 오르는 계단, 밑을 보면 어지럽고 아찔하다.

 

 

여러나라의 언어로 지저분하게 낙서된 전승기념탑 난간벽

 

 

 

계속 오르다보니 출구가 또 나왔다. 나와보니 베를린이 웬만해서 훤하게 보였다. 하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멀리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베를린의 겨울의 정취를 감상하면서 사진을 몇 장 담았다.

 

 

 

 

전승기념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빅토리아 여신상, 상당히 거대해 보였다.

 

 

 

 

꼭대기에서 감상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갈 때 브란덴부르크 문 쪽을 통해서 관광하며 가기로 했다.

 

 

 

막상 내려오다보니 시계가 없어서 몇시 몇분인지 모르고 있었다. 마침 전승기념탑의 입구 앞에 두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본인은 그들에게 시간을 물어보기로 했다.

"Excuse me, But do you have the time?"

돌아온 대답은 "What?!"-_-;;

'아 이런 이 무식한 년을 봤나...ㅡ.,ㅡ^'

아마 그녀들은 본인이 작업거는 줄 알고 그렇게 되물었는지 다시한번 말해달라는 옳은 표현을 몰라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아온 대답을 들었을 때는 정이 뚝 떨어졌다.

여튼 팔목을 드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제야 그녀들은 시계를 보여주었다.

 

 

본인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향해 6월 17일의 거리를 걸었다. 한 5분정도 걸었을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도에는 브란덴부르크로 가는 6월 17일거리에는 철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눈 앞에는 6월 17일 거리 앞에 철로가 놓인 높은 다리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반대편으로 6월 17일 거리를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사진촬영 돌입!!

 

 

 

황금의 빅토리아 여신상은 오늘도 전승기념탑을 지키고 있다.

 

 

 

 

잠시 후, 웬 탱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념비에는 러시아어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가이드북을 참고하니 러시아 전승 기념비였다. 기념비 위에는 한 군인의 동상이 총을 어깨에 맨 체로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기념비에 새겨진 러시아어는 과연 무엇을 알리고 있는 것일까....?

 

 

 

전승기념비는 한 때 구소련의 막강했던 군사력을 어필하는 듯 했다. 하지만 본인이 느낄 수 있는 정서는 오직 씁쓸함 뿐이었다. 구 소련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계속해서 걸었더니 옆에 공중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방광에 신호가 와서 이용하고 가려고 했는데 유료일 뿐더러 사용방법이 복잡해보였다. 게다가 현 상태에서는 영어독해조차 짜증나게 느껴졌다...-_- 또 유로키랑 사용 제한시간이 20분은 뭥미;;

 

 

 

계속해서 걸었더니 엄청 커다란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이 베를린의 명물(?)중의 하나인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베를린 장벽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크고 웅장했다.

 

 

 

 

 

 

 

문을 지나고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마침 위병 두명이 서 있었다. 일단 본인은 위병에게 사진찍어도 되냐고 동의를 구한 뒤 사진촬영을 했다.

 

 

 

이번에는 위병과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본인은 사진 같이찍자고 한 뒤 지나가던 한 아줌마를 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기계치였는지 사진을 한두번도 아니고 몇번째 계속 찍지 못하는 것이었다. 답답한 본인은 그 아줌마에게 사진찍는 요령을 설명하면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어쩌다가 사진이 찍혀버렸다.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다 보니까 의도치 않게 그 아줌마의 남편되는 분의 사진을 실수로 찍어버렸다.-_-

 

 

 

 

 

우여곡절 끝에 사진을 간신히 찍었다. 본인은 사진찍어준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위병아저씨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려는 찰나에 그 위병아저씨는 2유로 내고 가라고 한다.-_- 사진촬영이 유료인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ㅠㅠ 어쨌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위병아저씨에게 €2를 내고 운터 덴 린텐쪽으로 걸어갔다. 오른쪽에는 미국대사관이 보였다.

 

 

 

운터 덴 린텐

 

계속 걸을수록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밀려왔다. 마음같아서는 빨리 호스텔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호스텔로 가는 길목에는 많은 관광명소들이 깔리고 깔렸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걷다보니 왼쪽에 웅장한 성당이 하나 있었다.

 

 

 

 

건물 오른편에는 한창 보수작업 중이었지만 담쟁이덩쿨로 감켜진 건축물은 그야말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여름에 갔었더라면 이 건축물은 녹색의 무성한 담쟁이로 감켜있을테고 한층 더 아름다운 모습을 뽐낼 수 있었을텐데...

 

 

조금 더 가니 학교 하나가 보였다. 가이드북을 보니 훔볼트 대학교였다. 그런데 대학교라고 하기엔 크기가 너무나도 작았다.-_-; 한국의 초,중,고등학교도 이보다는 더 클 거 같았다. 정문 앞의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입성!!

 

 

훔볼트 대학교 정문

 

 

실내에 독일어로 새겨진 사회주의 혁명가 칼 마르크스의 명언

뭐라고 써져있는걸까...?

 

 

다리에 왔을 때 쯤에 어느 한 할머니가 영어 할 줄 아냐고 하면서 도와달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독일인에게 돈 뜯기던 더러운 경험이 생각나서 한국어로 영어 아예 못하니까 딴사람 알아보라고 했다.

계속 가다보니 웅장한 역사박물관이 나왔다. 베를린에서 최고의 명물중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 관광하고 나오고 싶었지만 이젠 돈도 없을 뿐더러 집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으로 돈을 아껴야만 했다. 아쉬운대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 섬 방향으로 꺾어가려고 할 때 한 거대한 성당이 본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베를린의 옛 건축물은 하나하나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길 곳곳에는 거리의 악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돈만 많았다면 박물관 섬도 구경하고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는 관계로 박물관 섬은 베를린에 다시 오게 될 때 구경하기로 했다.

 

걷다보니 프리드리히(Friedrich)거리에 왔다. 거리에는 동양인들 또한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젠 동양인을 봐도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동양인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일 뿐, 한국인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일단 배가 좀 고프고 출출하니 길거리에서 €1.2의 케찹묻힌 긴 소세지 하나만 달랑 들어있는 햄버거빵을 먹기로 했다. 그걸로 허기를 달래고 인근 은행에서 마지막으로 €10를 더 출금하고 호스텔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호스텔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였나, 저기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는 다리대로 계속 아팠다. 본인으로써는 드디어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 1시간정도 헤매다가 호스텔로 가는 길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손도 너무 시려웠고 바지와 신발도 다 젖어서 축축했다. 게다가 몸마저 극도로 피곤해졌다. 일단 호스텔로 고고씽!

 

들어오니 카운터의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와서 우선 바지부터 벗어서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바지와 양말, 그리고 젖은 신발을 라이에이터기에 올려놓았다. 잠시 호스텔 마당을 사진촬영하고 몸이 극도로 피곤해진 본인은 한 몇시간정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잠시 후, 한 동양인의 여자가 들어와서 본인에게 언제까지 묵을거냐고 물어봤다. 본인은 내일 아침에 자리를 비우고 귀국할거라는 말을 잠결에 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잠들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본인의 맞은편의 1층침대에는 한 동양인 여자가 피곤했는지 자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호스텔의 왼쪽 건물을 한 편에서는 한 독일여성이 요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왼쪽건물의 1층은 요가교실이었다.

 

 

 

그리고 말린 옷을 입고 호스텔 프론트로 내려가서 시계를 봤는데 아직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나가서 저녁도 간단하게 해결할 겸 베를린의 야경을 찍고 오기로 했다. 삼각대와 크로스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목이 너무 탔다. 그래서 본인은 슈퍼마켓에 가서 좀 비싸더라도 생수를 하나 사먹기로 했다. 일단 슈퍼마켓으로 입성!! 생수를 찾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트 가운데에 정수기가 하나 있었다. 혹시 시음인지 돈내고 먹어야 되는지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시음용인듯 했다. 살았다 싶어서 본인은 그 정수기에 들어있는 물을 몇잔 들이켰다. 운좋게도 본인은 공짜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저녁은 간이 식당으로 가서 고기가 들어있는 핫도그와 스프라이트 사이다 250ml로 해결을 봤다. 가격은 다 합해서 무려 €3정도;; 일단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야경촬영을 했다.

 

 

간이 식당에서 찍은 베를린의 밤거리

 

아무리 찍어도 야경은 이쁘게 나오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장소를 옮겨서 찍기로 했다. 마침 아까 무심코 봤던 백화점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야경 촬영!!

 

 

 

호스텔로 가는 길의 거리도 한번 찍어보았다. 밤거리는 대체로 잘 나왔다.

 

 

 

더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날씨도 너무 추운데다가 오른다리에 드디어 한계가 왔다. 어쩔 수 없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다시 호스텔로 들어갔다. 시계는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프론트에는 금발의 스탭언냐가 반겨주었다. 사진찍어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고 사진촬영 뒤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컴퓨터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컴퓨터에는 10분에 €0.1라고 표시되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돈을 아껴야 하는 관계로 PC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는 운좋게 사용시간을 다 못채운 컴퓨터를 중간에 차지해서 무료로 웹서핑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그러고보니 네덜란드의 the Shelter 호스텔도 컴퓨터사용이 무료가 아니라는 말이 생각났다.)

 

 

전형적인 독일미인의 모습을 한 스탭 언냐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올라갔다. 마음같아서는 더 관광하고 싶었지만 몸은 다시 피곤해졌고 다리의 통증도 더해졌고 내일 늦어도 아침 10시까지 테겔공항으로 가야했기에 충분히 쉬어야만 했다. 내일은 드디어 귀국하는 날이구나... 자기전에 호스텔 마당을 촬영하고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침대 위에서 잠을 청했다.

 

 

 

 

이시간 부로 본인의 여정은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짧은기간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체험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아 돌면서도 한편으로는 특별했던

단독배낭여행이었다.

 

내일이면 돌아가게 된다, 집으로.....!

본인과 마주쳤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본인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