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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15~2016년 우크라이나 힐링여행기

우크라이나 여행기 2편(2016년 새해맞이)

규맨입니다.

1년넘게 벨라루스에서 거주하면서 역동적으로 지내느라

한동안 우크라이나 여행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우크라이나에만 세 번 더 다녀왔었는데...

2년여동안 미뤘던 여행기를 이제야 이어서 쓰게 됩니다.

 

 

2015년의 마지막도 어느 덧 이틀이 남았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소피아성당 주변부터 쭉 돌았다.

우크라이나의 겨울날씨는 살을 베는 듯 꽤 매서웠다.

 

 

소피아성당 아래의 광장

크고 작은 행사가 자주 열리며

특히 크리스마스(12월 말~1월 중순) 시즌 때 항상 시끌벅적하다.

 

 

성 미하일로프스키 성당

 

 

 

 

2013~2014년 유로마이단 때 죽어간 희생자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추운 겨울의 이미지에 맞게 미하일로프스키 성당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년 전 드네프로 강변을 감상했던 성 안드레이 성당 쪽으로 향했다.

아뿔싸!! 성 안드레이 성당은 보수공사 중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훗날을 기약하며 대충 둘러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체감온도는 한국보다도 더 추웠다.

2일 전 두바이에 있었을 땐 따스한 늦봄의 날씨라 옷을 가볍게 입고 다녔는데

갑자기 아주 추운 곳으로 오니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6년 전 2월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춥지 않았는데

가만히만 있어도 귀와 손이 금방 빨개질 정도로 너무 추웠다.

카페에 들러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카푸치노와 쓰르니키(치즈전(?))

 

나이를 이미 30 넘어서일까

예전에 비해 많이 돌아다니고 움직이는게 좀 더 버거울 정도였다.

 

식사를 다 끝마치고 후니꿀료르(케이블카) 쪽으로 가봤다.

마침 케이블카는 운영 중에 있었다.

3년 전 가을에 들렀을 땐 공사중이라서 이용을 못했던게 못내 아쉬웠는데...

 

 

 

 

 

 

 

 

꼰뜨락또바(Контрактова) 주변을 돌다보니 어느 새 하늘은 금방 어둑해졌다.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늘이 금방 어둑해지니 하루를 벌써 다 써버린 듯한 허무함이 느껴졌다.

 

 

 

 

 

셰브첸코 대학교 맞은 편의 공원

새해맞이가 한창이었다.

푯말은 '로맨틱한 새해 되세요!'

 

 

어둠 속의 셰브첸코 대학교는 붉은 빛을 내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성 볼로디미르 성당

 

우크라이나 첫 방문때 가장 많이 배회했던 곳 서커스장

 

어느 덧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인스타에서 알게 된 올랴를 만나러 르바 똘스또호(Льва Тольстого) 역으로 향했다.

 

대형쇼핑몰 오션 플라자

 

오션 플라자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서 그녀는 담배를 피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일주일 전에 문의를 줬던 K씨와 올랴의 친구들도 도착했다.

다 모인 대로 한식당으로 갔다.

 

키예프의 한식당 아리랑. 오션 플라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사실 우크라이나에 접한 한식당은 그닥 반갑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고유 문화를 느끼러 먼 곳까지 왔는데 굳이 한식당에 가야했는가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순간 생각난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러고보니 기존의 내 친구들은 한국음식을 맛본 적이 없었지

 

 

한식당에서의 새해맞이

 

식사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갔다.

날씨가 너무 추운 관계로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들기로 했다.

 

드디어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 연말 및 새해맞이는 태어나고 처음으로 해외에서 맞이하게 됐다.

기분이 참 묘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회사를 제발로 나간게 입사했던 때보다 더 기뻤을 정도였다.

지난 한 해 동안 그 곳에서 속절없이 재능을 낭비했고 저평가를 받아왔었다.

2년 뒤인 지금 이 순간 아직 일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그 결정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

어차피 버티면서 남았어도 월급인상폭도 작은 데다 진급도 보장할 수 없었겠지

 

먼저 조국의 어머니 상을 보러 아르세날 역으로 향했다.

3년 전에 키예프에 일주일 넘게 있었으면서 왜 조국의 어머니상은 못 봤을까...?

 

 

제 2차 세계대전 참전자 위령탑

 

불은 꺼지지 않은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라브라(페쩨르스까야) 수도원

 

 

 

조국의 어머니상

드네프로 강에서 잘 보이는 큰 동상

 

조국의 어머니상 아래에는 입장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그러나 입장은 불가한 상태였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휴무한건가...?

뭐 언젠가 다시한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

게다가 날씨는 너무 추워서 밖에 오래 있기도 힘들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아르세날 역 근처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드니프로 역으로 향했다.

 

 

 

 

 

소녀상

이미지가 한국의 소녀상이랑 겹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드니프로 역에서 바라본 드니프로 강변

날씨가 흐려서 그런 지 우중충했다.

 

드니프로 역

빨간선은 이 역을 지난 이후로 모두 지상에 위치해 있다.

 

키예프의 지하철역 전경

 

디나모 키예프 올림픽스카 구장

올림픽스카(Олімпіська) 역에서 하차하여 디나모 키예프 팬샵으로 들어갔다.

음, 뭔가 좋은 아이템이 없을까~

 

 

 

 

디나모 키예프 트로피 수집관

 

디나모 키예프 팬 샵

 

 

키예프의 흔한 영화관

 

날이 어둑해 질 때 까지 시내를 돌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다.

오후 5시경이 되자 한국은 이미 자정을 넘긴 뒤였다.

여친에게 새해인사를 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남긴 뒤 휴식을 취했다.

마침 호스텔은 새해맞이 준비로 분주해있었다.

저녁 7시 경, 터키에서 온 하칸은 호스텔 스탭과 함께 장보러 갈 것을 제안했다.

마침 할 일도 없었고 연말의 분위기를 만끽할 겸, 하칸과 함께 장 보러 흐레샤칙 거리로 나왔다.

거리 곳곳에는 ABBA의 Happy New Year 팝송이 흘러나왔다.

 

흐레샤칙(Крешатик) 대로

 

흐레샤칙 재래시장

 

장을 다 봤을때 즘 밤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차적응이 아직 안되어서인지 너무 돌아다녀서인지 피로가 쏟아졌다.

알람을 밤 11시에 맞춰놓고 한숨 자기로 했다.

 

밤 11시경에 소피아 성당에 가서 새해맞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밖은 상당히 추운 데다가 폭설까지 내리고 있었던 상황

게다가 잠이 다 깨지 않아서 정신마저 혼미해 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다 스탭 및 투숙객들은 이미 새해맞이를 준비하려 상을 차리고 있었고

 

 

 

어느 덧 자정이 다가왔고

사람들은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비록 한국인들보다 7시간 더 2015년을 보냈지만

어느 덧 2015년은 저물었고 2016년이 왔다.

나를 비롯한 서로가 축배를 들며 사진으로 순간을 남기며 덕담을 주고받았고

나는 생각난 사람들이 있어 현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축복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너무나도 힘들었던 2015년

서럽고 힘들었던 회사생활 또한 과거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벨라루스에서 지낼 2016년이 다가왔다.

해피 뉴 이어!!

스 노븸 고담!!

 

새해 첫 날, 느긋하게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모든 이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리비우로 떠날 채비를 했다.

 

리비우로 떠나기 전 한 호스텔 스탭이 작은 인형을 건네 주면서 다시 키예프로 돌아오게 되거든 돌려주라고 농을 던졌다.

그렇게 나는 투숙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표를 사기에 앞서 역 근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해결하다보니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빌렛 어플에서 기차시각을 보니 5시 15분 경이었다.

키예프 기차역도 어느 덧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스킨헤드들이 덮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었는데

그것 또한 쓸데없었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을 무렵, 하늘은 이미 짙은 어둠에 깔려 있었다.

짐을 꾸리고 기차에 탑승을 했다.

기차는 생각 외로 신식에 와이파이도 가동이 됐었다.

 

 

밤 10시 경, 3년 만에 다시 리비우에 왔다.

도착한 대로 택시를 잡고 타냐가 알려준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마침 그녀의 집에서는 그녀의 가족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