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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12 유럽횡단여행+중국

용감한 단독 유럽횡단여행기(우크라이나 리비우 편 3)

 

 

 

 

부제: 아쉬운 경사

 

 핸드폰 알람소리가 울려서 간신히 일어났다. 머리는 지끈거렸다.(르비프에 와서 난 맨날 술이야~♬)

 당최 이날은 아침에 짐싸고 키예프로 떠나기로 했는데 키예프로 가기가 귀찮아졌다.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하룻밤 더 눌러있기로 결정했다.(아오 머리야~ 아오 머리야~)

 이날 계획은, 오전엔 성채언덕에 올라갔다왔다 오후에 역사박물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날의 바람은 꽤 선선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간단하게 챙기고 성채언덕으로 올라갔다.

 

 3년 전의 성채언덕길은 눈이 많이 쌓였기에 올라가기가 버거웠는데 이날 성채언덕 가는 길은 홀가분했고 여유롭기만 했다. 르비프를 며칠간 다니면서 내 자신에 대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3년 전에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이날의 나는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아니, 프랑스에 도착할 때 부터 꽤 여유로웠다. 서유럽은 안정된 치안때문에 여유로웠고 동유럽은 엄청나게 싼 물가때문에 여유로웠다. 어쨌거나, 드디어 3년 만에 올라가보는 성채언덕이구나!

 

 

 

 

 

 

 

 

 

 

 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꽤나 시원했고 하늘은 변함없이 맑고 청명했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도시는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3년 전엔 꼭대기가 추웠는데... 그대신 눈이 덮였던 설경은 이날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어쨌든 이곳이 과연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맑은 하늘은 나의 안구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줬다.

 

 성채언덕에서 경치감상을 다 마치고 중심가로 돌아가서 간단히 점심해결 뒤,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서 중간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vk를 접속했다.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이리나에게 쪽지가 와있었다.

 

 '안녕! 내게 소식이 생겼어.

 나 3주전에 아들을 출산했어.

 지금 아들에겐 내 관심이 중요한 때야

 그래서 모든 약속 다 취소하고 애를 돌보고 있어.

 이해해줬음 좋겠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랄게!'

 

 드디어 애를 출산했구나!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뿐... 갑자기 기분이 허전해졌다. 이 여행이 내게 있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지도 모르는데.... 나는 널 만나러 우크라이나에 왔다구!ㅠㅠ 그렇다고 애를 놔두고 내게로 놀러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리나, 그녀는 3년 전 키예프에서 르비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알게 된 인연이었다. 당시 그녀의 좌석은 내 옆자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와 나는 대화를 트기 시작했고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면서 연락하다 지금까지 이렇게 친구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해 8월 말에 결혼했다고 했지만 나 비행기 타고 한국 떴을 적에 애를 출산했구나...!

 

 이어서 안나에게도 연락을 해봤다. 이틀 뒤에 서커스장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별 무리 없을거라고 답신을 했다.

 그래도 이리나와는 어떻게서든 소식은 주고받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어차피 키예프에는 6일 정도 있다가 갈 계획이니까! 다시 기운을 내면서 밖을 나섰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르비프 역사박물관이었다. 내부는 웅장하면서도 엄숙했다.

 

 르비프 역사박물관은 시대별로 회화작품을 전시해놓았다. 중세기와 근세기가 회화 장르의 명확한 기준이었다. 중세기의 작품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정교(카톨릭과 비슷한 계열)에 대해 다뤘다. 예수, 성모 마리아, 십자가 등등... 중세기의 작품은 종교와 관련된 작품 말고는 없었다.

 근세기의 작품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서민들의 일상에 대해 다뤘다. 그 과도기가 대략 19세기쯤이었다. 장르 또한 다양했다. 르비프의 풍경, 민속박물관에 나와있던 집들, 특정 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들 등등,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교에 대해 다룬건 거의 없었다. 박물관의 작품을 통해서 중세기엔 우크라이나 정교라는 족쇄에 매여 있었던 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관람을 다 마치고 박물관 뒷쪽에 위치해있는 민예품 재래시장으로 갔다. 시장에는 많고 많은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도자기, 열쇠고리, 마뜨료쉬까(목각인형), 계란공예품 등등. 기념품들은 웬만해서 시청쪽에 있는 가게보다 더 저렴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서민적인 냄새가 풍겨오는 소박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중심가에서 구입한 기념품을 세며 쉬고 있었는데 마침 D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일과 끝마치고 퇴근한 모양이었다. 녀석에게 휴가건에 대해 물어봤더니 결국은 9월 말에 휴가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9월 20일 경에 베이징에 못가게 됐다고 했다. 벌써 약속이 세 건이나 파토났다. 마그달레나, 이리나, 그리고 D군.

 여행 중에 K군에게도 물어봤는데 K군도 비행시간이 아직 확정이 나지 않은 지라 베이징에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제 남은건 쩌쳰. 분명한 건, 그녀는 취업상태인데다 타이위안에서 베이징까지의 비행기 요금은 꽤 비싸고 베이징까지 기차로 가는데 무려 한나절 훨씬 넘게 걸리기에 베이징에 올 수 없다고 못을 박아둔 상태다. 과연 나는 쩌쳰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르비프에 있은지 벌써 4일째다. 3년 전에는 꼴랑 1박2일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많고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고 올가,타냐라는 친구를 만들었다.(안타깝게도 올가는 필자의 실수로 절교된 친구다.ㅠ). 그런데 지금은 타냐 부부, 솔로미아 커플 외엔 새로이 알게 된 사람이 없었으며 부딪힌 사람들 또한 별로 없었다. 예전에 비해 또라이 근성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땐 근거없는 또라이 정신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부딪힐 수 있었는데.... 3년 전을 돌아보면 타냐와의 발렌타인데이 번개키스는 크나큰 행운이었던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호스텔로 다시 돌아갔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콤비는 짐 싸고 체크아웃 한 상태였다. 그 대신 새로운 투숙객 한명이 들어왔다.

 

 "여어, 안녕! 만나서 반갑다"

 "그래, 환영한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름은 랜디야"

 "나는 잉글랜드에서 왔고 제임스야"

 "그렇구나!"

 "보게되어 반갑다! 근데 표정이 조금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일 있나?"

 "사실 나 키예프에서 만나기로 약속잡은 친구가 있어, 그런데 걔가 애를 출산해가지고 애를 돌보느라 집에서 나갈 수가 없대, 근데 이게 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는게 좀 슬퍼."

 "넌 올해 나이 몇이야?"

 "난 올해 27살이야, 이제 취업하게 되면 음.....(영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서 말문이 막혔다.)"

 "취업하게되면 시간이 없어진다는거지? 넌 뭔 걱정을 그리하냐~ 난 올해로 29살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여행을 하고 있잖아! 아직 시간은 많아!"

 "그래, 위로해줘서 고마워! 나 다시 이여행 또 할수 있게될거라 믿고있어!"

 "그럼, 그렇게 사는거야!"

 "참! 이따가 시간 되면 사도마조에서 술 한잔하자! 어때?"

 "그래, 그거 좋은생각이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갔는데 소피아가 다시 돌아와있었다.

 

 "어, 안녕! 너 아직 키예프로 안갔네?"

 "그럼! 내가 널 얼마나 보고싶었는데~ㅋㅋ"

 "나도 너 보니까 반갑네?ㅋㅋ"

 "내가 내준 숙제는 풀었어?"

 "숙제가 뭔데?"

 "내가 한국어로 쓴거 해석하는게 숙제였잖아~"

 "음..., 나 아직 못풀었는데~^^;;;"

 "아 뭐야~ㅋㅋㅋ"

 "참, 좀이따가 내 친구 여기 오기로 했어, 이따 오면 인사하고 그래~"

 "알았어, 나야 대 환영이지^^"

 

 잠시 후, 소피아의 친구가 들어왔다. 그는 나와 거의 도풀갱어 수준이었다.

 

 "반가워, 나는 소피아의 친구야."

 "그래, 나 또한 반갑다 ㅋ 너도 이참에 소피아한테 내준 숙제 한번 풀어볼래?"

 "음.... 나도 한국어는 전혀 모르겠는데?ㅋ"

 "아오~~~!! 일단 이 한국어, 키릴문자로 써볼게!"

 "음.... '사랑해요 소피아?'"

 "자! 이 문장을 이제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로 해석해봐 ㅋ""

 "......^^;"

 "그냥 이자리에서 해석해주면 안될까?ㅋ"

 "우쒸~ 잠깐 기다려봐~"

 그리고 별 수 없이 싱겁게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는 나."

 "아하! '사랑해요 소피아'! 이게 사랑해요 소피아란 뜻이었구나 ㅋㅋㅋ"

 "아놔~ 몰라~~ 웬만해서 안밝히려고 했는데~"

 "히히히, 어쩜 그렇게 새삼스럽게 표현을 하니~"

 "아씨~ 몰라~-ㅡㅡㅋ"

 

 이때 제임스도 부엌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들어오셨죠? 뭐 필요한거 있으세요?"

 "아뇨, 특별히 없어요"

 "참, 제임스! 우리 지금 사도마조로 가는게 어때?"

 "랜디, 미안해. 나 지금 몸이 안좋아서 쉬어야되. 같이 술 못마실거 같아."

 "그래? 이거 유감이네... 어쩔 수 없지. 일단 푹 쉬고 회복 잘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근데 사도마조가 어떤 곳이죠?"

 "거기는 새디스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술집이에요. 르비프의 명물로 유명하죠"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하시는일이 어떻게되요?"

 "저는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영어강사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바르고 정확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예요"

 "아~ 그렇군요"

 "아마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 해주는게 가장 시급한거 같아. 우리는 영어교육에 많이 투자하고 영어공부를 많이 하는데 정작 외국인들한텐 대다수가 한 마디도 못해. 가령,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접근하면 대다수가 웃으면서 '아임쏘리'라고 한 뒤에 재빨리 도망치지."

 "아, 그래서 너도 영어 잘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구나"

 "어, 우리는 주로 읽기와 듣기를 위주로 가르치고 취업을 위한 영어만 가르치지, 말하기는 거의 안가르치고 외국인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영어는 배우지 않아,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

 "근데 기본 러시아어는 할 줄 아세요?"

 "조금은 익혀왔어요, 여행하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예로들면 '하라쇼' 근데 러시아어는 너무 어렵네요 ㅋ"

 "그쵸, 우크라이나어도 그리 쉽지는 않고요"

 "근데 소피아 친구, 넌 몇살이야?"

 "나? 올해로 25살인데?"

 '엥?? 이녀석 근데 왜이렇게 노안이지???O_o 나보다도 더 삭아보이는구마 ㅋㅋㅋㅋ'

 "ㅎㄷㄷㄷ, 제임스가 좀 더 어려보이네요 ㅋㅋㅋㅋ"

 "엥???"

 "제임스가 면도를 한다면요 ㅋㅋㅋ"

 "내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나?"

 "미안하지만 조금...^^; 참, 너네 벨기에초콜렛 한번 먹어볼래?ㅋ 브뤼셀 들르는 길에 초콜렛 사왔는데 ㅋㅋ"

 "오케이!"

 "랜디, 나는 이만 쉬러 가야겠어, 좋은밤 되고 좋은여행 되길 바랄게!"

 "고마워, 형도 푹쉬고!"

 

 

 

스탭 소피아랑

 

소피아의 친구랑. 영락없는 덤&더머!!

 

 

 

 소피아와 만담을 나누고 사진놀이를 하다보니, 어느 새 밤은 깊어졌다. 다음날 아침엔 무슨일이 있어도 키예프로 가기로 했다. 밤에 이동 안하는 이유는 피곤해서도 그렇지만 경찰들이 불법을 자행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년전과 4일전에 경찰들은 모두 밤에 돈을 갈취했다.)

 자기 전에 vk를 확인해봤다. 전날 올렸던 사진을 보니 이미 솔로미아가 몇개의 댓글을 남겨놨다.(적극적인게 맘에드는걸~ㅋㅋ) 그리고 타냐도 수많은 여행사진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고 갔다.

 

 드디어 다음날이면 정들고 정든 르비프를 떠나게 된다. 아직 르비프를 나간 건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좋은 인상만 많이 받았다. 좀 더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그리고 만약 올가와 절교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쯤 그녀의 남편과 친구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올가와 절교된건 마음이 아팠지만 그대신 솔로미아와 소피아라는 새로운 친구를 얻지 않았는가~

 

 르비프의 평온하고 고요한 밤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