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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12 유럽횡단여행+중국

용감한 단독 유럽횡단여행기(우크라이나 키예프로 가는 길)

 

 

 

 

 부제: 진격!

 

 아침이 밝아오는대로 씻을 겨를도 없이 짐부터 퍼뜩 챙겼다. 부엌은 소피아가 지키고 있었다.

 당최 기차타기로 한 시각은 오전 9시쯤. 소피아와 작별인사 뒤 트램을 타러 시청 쪽으로 나갔다. 일단 트램을 잡긴 했다. 휴~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차!! 트램을 반대방향에서 탔다!! 젠장!!!!! 급하게 타느라 트램이 어느방향으로 갈 지 계산을 못해뒀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했을 때, 트램은 중심가를 벗어나다시피 이미 멀리까지 와 버린 상황. 에라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다음역에서 내리려고 생각한 찰나에 중앙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중앙역까진 무사히 왔다.

 짐을 싸고 내리려는데 웬 사복차림의 남자가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다. 내 티켓을 확인한 그 남자는 뭔가 납득을 했다는 듯이 이내 티켓을 돌려주고 다른사람에게 검표하러 갔다. 알고보니 사복차림의 검표원이었던 것이다.

 

 10시쯤에 가는 열차를 타려는데 그 열차는 이미 만석이라서 탈 수 없다고 한다. 별 수 없이 조금 더 늦어지는대로 50grv를 더내고 11에 출발하는 티켓을 구입했다.

 

 대기하는 동안,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멍때렸다.

 

 

 

르비프 중앙역 역사 내부

 

 

 

 10시 50분 쯤에 키예프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그 기차는 베네치아에서 출발하여 헝가리,우크라이나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가는 침대칸 열차였다.(그래서 차비가 좀 더 비쌌구나 ㄷㄷㄷ) 티켓을 보니 키예프에는 밤 8시쯤에 도착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제시간이 되자 기차는 모스크바를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에서, 르비프에서는 아무런 사고없이 좋은 추억만 만들다가 떠났다. 타냐,안드레이,솔로미아,드미트로,소피아. 나는 가서도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거야! 타냐의 결혼소식을 접하고 만나기 전까진 그녀는 내가 찜해둔 사랑의 대상이었는데....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서 그녀와 절친이 됐고 안드레이 앞에서도 당당해 질 수 있었다. 3년 전에 묵혀뒀던 한은 이것으로써 다 풀렸다.

 

 짐은 지정된 침대칸에 갔다놨다. 칸 안에는 장거리 여행중인 무뚝뚝한 세명의 50대 아저씨들이 앉아 있었다. 안은 따뜻했으나 다소 공기가 텁텁했다. 침대칸에 앉은 지 얼마 못있어 MP3플레이어를 들고 통로로 나왔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창밖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청명해보였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 보니 갑자기 배가 출출해졌다. 통로에는 스낵을 파는 무뚝뚝한 승무원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썬칩과 비슷한 과자랑 생수 한병을 샀는데 다 합해서 도합 약 50grv.(어이어이~ 아줌마! 왜 모스크바 물가로 가격을 매기냐구요~ 한국과자도 그렇게 안비싸다구요!ㅠㅠ)

 

 갑자기 아랫배랑 괄약근에 신호가 왔다. 견디다 못해 화장실로 달려가서 장에 묵혀뒀던 것들을 한꺼번에 배출해냈다. 레버를 내리는데 동유럽 기차는 한국 기차와는 달리 하수저장소에 찌꺼기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철로에 냅다버리는 방식이었다. 순간, 일본의 자기계발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남긴 명언이 생각났다. - '남의 나라에 왔다면 그나라에서 똥을 한번 싸봐라' 나는 그것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똥을 싸고 그 똥을 철로에다 냅다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으로써 소소한 미션 썩세스!!! :]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잠시 어떤 역에 정차했다. 문자를 읽어보니 '흐멜니츠키' 역이었다. 우크라이나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고 맑았다. 그것도 며칠 내내. 내가 르비프에 도착한 이래로 우크라이나는 전국이 맑은 모양이었다.

 

 

 

 

 

 

 약 20분정도를 쉰 기차는 다시 모스크바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당최 종착지는 키예프가 아닌 모스크바로 설정하려고 했다. 옐레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그녀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 한달동안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그녀를 만나면서 그녀를 에스코트 해주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면서 그녀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는데....

 그녀가 귀국하는 날, 점심식사때 뭔가 불만이 있었는 듯이 난폭한 행동을 했는데 나도 덩달아 폭발하고 그녀를 떼놓고 혼자 나와버리면서 거기서 그녀와 안 좋게 끝이 나버렸다. 그녀가 귀국뒤 화해를 청했고 어떻게서든 다시 좋아지긴 했으나 나는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직접 하고 싶었다. 모스크바에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매몰찬 그녀는 대놓고 나를 모스크바에서 보고싶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시크하게 굴었던걸까...?

 결국 나는 대범하지 못하게 OUT지점을 모스크바가 아닌 키예프로 정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유럽여행을 시작한 날에 그녀 역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출국 전에 그녀에게 물어봤더니 그녀는 1년간 대구에서 지낼거라고 했다. 모스크바를 포기한 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어찌보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를 가는 명분은 옐레나, 그녀때문이었으니까.

 

 창 밖의 풍경은 노랗게 물든 밭, 그리고 정겨운 시골 풍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파란 하늘과 노랗게 익은 곡식밭은 우크라이나 국기모양을 잘 연출하고 있었다.

 

 

 

 

 

 

 

 

 창 밖의 지형은 한없이 평평하디 평평했다. 산이 있어도 높이가 낮은 구릉 뿐이었다. 5년 전에 갔던 몽골 초원도 그런 형태였다. 그래서 옛날에 몽골 기마병들이 우크라이나(키예프 공국)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일까? 지금 지나고 있는 그곳은 아마 징기스 칸의 손자 바투 칸이 기마병을 이끌고 진격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을 기차로 진격 중이다. 방향만 바꿔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 단독여행의 영문 이름은 징기스 칸 파워 트립(Chinggis Khaan Power Trip)이니까 ㅋㅋㅋㅋ

 

 

 

5년 전의 몽골 초원(바양항그르로 가는 길)

 

 

 

 어느 덧 해는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짐을 싸서 내릴 준비를 했다.

 해가 다 지고 완전 어두워져서야 기차는 나의 최종 종착지인 키예프에 도착했다. 이 때 시계는 8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르비프는 8시 20분되서야 해가 완전히 다 졌는데 키예프는 좀 더 빨리 졌다. 드디어 3년만에 다시 키예프 땅을 밟게 됐다. 3년 전에는 생에 첫 유럽여행의 시작점이었던 곳이었다. 열차 통제관에게 고맙다는 인사 뒤 다시 짐을 재정리하고 역을 빠져나갈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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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0일간 총 4,500km나 되는 거리, 그리고 총 10개국을 홀로 달려왔다. 러시아 횡단하는 사람들한텐 찍소리도 할 수 없는 거리지만 이정도도 웬만해서 어마어마하다. 파란만장했던 유럽여행이 이렇게 끝이 나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