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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ggis Khaan Power Trips/2012 유럽횡단여행+중국

용감한 단독 유럽횡단여행기(북경으로 가는 길)

 

 

 

 

부제: 꿈을 그려보았다.

 

 

 알람소리가 몇번이고 울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정신을 못차린 상황이었다. 스킨헤드 뉴요커가 직접 깨서 내 핸드폰 알람을 꺼줘서야 정신차렸다. 스킨헤드 뉴요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 뒤 일어나서 대충 씻었다. 머리를 감을 시간도 없었다. 가기 전에 스킨헤드 뉴요커,피오나, 그리고 호스텔 스탭들에게 인사하고 싶었지만 인사하려고 깨우기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 올 줄 알고 전날 밤 스탭에게 미리 키를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하리키프스카 역을 가기 전에 앱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봤는데 하리키프스카 한정거장 전에 이리나가 알려준 전철 역이 있었다. 아직은 약 4시간 가량 남은 상황이니 잠깐이라도 이리나 얼굴을 보고 가기로 했다. 뺘뜨쟌까 역에 내렸더니 주변엔 아파트단지들로 늘어져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흐레호리 거리로 가는 방법을 물어봐가며 거리를 헤맸지만 흐레호리 거리는 끝내 찾지 못했고 시각은 이미 8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비행기를 놓치게된다! 어쩔 수 없이 이리나 보는 것을 다음으로 기약한 채, 공항버스 정류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 30분만에 공항버스는 공항에 도착했다. 유로 2012의 여파때문인지 공항에는 F터미널이 새로 신설되었다.

 

 

 

 

 

 

 

 공항에 입성해서 먼저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리나, 나 제냐야!"

"어 그래, 제냐"

"나 떠나기 전에 니 목소리 듣고싶어서 전화해봤어"

"그렇구나, 여행은 재밌게 했니?"

"응, 그래도 너 못본게 유감이네.ㅠ"

"응 나도ㅠ 너 지금 보리스필 공항에 있는거니?"

"응, 나 곧있음 북경으로 떠나게 될거야"

"그래, 좋은 여행 됐음 좋겠고 연락 또해!"

"알았어, 안드레이 출산한거 축하하고 안드레이랑 같이 행복해야되!"
중간중간에 갓난아기 안드레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나와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카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 나 제냐야! 기억나지?"

"당연하지! 너 이제 떠나는거야?"

"응, 나 곧있음 북경으로 가게 될거야, 카쨔, 정말 고마워! 나 어제 너때문에 너무나 행복했어"

"나도 어제 너로 인해 행복했어, 좋은여행 되길 바라고 또 연락하자"

"그래, 남은하루 잘보내!^^"


 그리고 남은 우크라이나 돈을 달러로 모두 바꾸러 은행으로 갔다. 그런데 창구 직원들은 무슨 종잇장 같은거 없으면 바꿔줄 수 없다면서 그 종잇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다른 창구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종잇장이 어딨는지 조차 알려주지도 않았다. 이런 젠장!


 환전소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보딩시간이 거의 다가왔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환전을 포기한 채 급히 보딩하러 갔다. 출국도장을 찍으려는 동시에 오스트리아 항공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급한대로 출국도장을 빨리 찍고 항공직원의 안내를 받아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자칫 잘못했다가 비행기를 놓칠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탑승한 지 약 20분 뒤, 비행기는 비엔나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거의 한달만에 유럽을 떠나게 된다.... 안녕,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폴란드,우크라이나여! 특히 내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던 네덜란드, 낭만을 선사해 주었던 프랑스, 큰 행복을 선사해 주었던 우크라이나...

 그렇게..., 그렇게..., 30일간의 파란만장했던 4,500km의 유럽횡단여행은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약 두시간 뒤 비행기는 비엔나 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슈베하트 공항은 벌써 세번째다. 중국에서 네덜란드로 갈 때,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로 갈 때,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으로 갈 때. 근데 뭘 잘못먹었는지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일단은 화장실로 고고고!!


 일을 보고나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남은 우크라이나 흐리브나화를 모두 처리하러 환전소로 갔다. 환전 수수료는 꽤 나갔지만 거기서는 군말없이 깔끔하게 모두 미국 달러로 바꿔줬다. 환전 뒤, 나도모르게 내 발길은 면세점을 향했다. 그러고보니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초콜렛을 사지 못했다. 내 손은 모차르트 초콜렛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국 모차르트 초콜렛을 중간 사이즈로 하나 구입했다. 이 초콜렛이 할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될것이란 것을 모른채......

 그리고 게이트를 확인하고 게이트 근처에서 폰을 충전했다. 이 때 절친 D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따, 이생키 타이밍 하나는 잘 맞추네 ㅋㅋ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왔다. 이젠 정말 유럽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하기힘든 유럽. 과연 나는 다시 유럽땅을 밟을 수 있을까?

 잠시 후, 비행기는 동쪽을 향해 비상하기 시작했다.

 

 

 

 

 

 

 

 4년 전, 나는 중국 베이징부터 핀란드 헬싱키까지 러시아를 횡단하는 러시아 대(大)육로횡단여행(The Great Chinggis Khaan Power Trip)이라는 실로 어마어마한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 여행루트는

 

베이징(중국)->다통->바오터우->울란바타르(몽골)->수흐바타르->이르쿠츠크(러시아)->노보시비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탈린(에스토니아)->헬싱키(핀란드)

 

였다. 하지만 시간과 돈 모두 여의치 못했다. 당시의 나는 종교활동에 열의가 있었던 터라 여행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게 부질없게 되어버릴 거란걸, 함께 했던 사람들과도 거의 남남이 되어버릴 거란 걸 예측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때 무엇을 위해 열심히 했던 것일까?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땐 여행을 떠날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못떠난게 당연한 결과다.

 결국 상황이 이래저래 여의치가 못했다는 핑계 때문에 러시아 육로횡단여행을 유럽 육로횡단여행으로 대체했다.


 암스테르담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내게 유럽에 대한 환상을 가져다 주었던 곳이었고 자유와 향락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지만 홍등가는 내게 큰 유희를 선사해 준 곳이었다. 눈이 즐거웠기에, 대화도 즐거웠기에, 그리고 어느 누구도 간섭할 이도 없었는데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았던 곳이 홍등가였다.

 브뤼셀은 비록 너무나도 짧았지만 여행의 참맛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주었던 곳이었다. 길을 잃고 호스텔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을 때, 그 중국인 일가족은 잘 알지도 못하고 신뢰조차 할 수 없는 외국인인 나를 길을 찾을 수 있게 기꺼이 도와줬다. 비록 그 호스텔에서 묵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직 그 중국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다녀온 사람들이 다소 위험한 곳일거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영어도 잘 했고 좋은 추억만 만들다 갔다.

 파리는 나를 설레이게 하면서도 외롭게 한 곳이었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도시였다. 그래서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서러움을 실컷 느껴야만 했다. 함께 여행온 부부나 연인, 특히 스위스에서 만나 연인이 되어 프랑스를 같이 여행했다는 커플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서 신혼여행은 꼭 프랑스로 가겠노라고 결심했다.

 스위스는 나를 잠시 초라하게 보이게 한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단독여행을 하고있는 내 자아를 다시 찾게 한 곳이었다. 명품시계를 보면서 잠시 좌절감에 빠졌지만 자유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내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 그런 곳이었다.

 베네치아에선 잠시 한국인들과 어울려서 돌아다녔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것보다 조금 더 재밌었지만 서로 남남인 형태로 여행을 했다는 점이 살짝 씁쓸했다. 서로 도움이 됐고 도와준 점에 대해선 좋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인연인데 갈라지면 남으로 돌아서게 된다는 점이 씁쓸했다. 그래도 음식은 유럽 중에서 가장 먹을 만했고 입맛이 맞았던 곳이었다. 아직도 나는 먹물 스파게티와 백세주 맛이 나는 와인을 잊을 수 없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고향이라는 걸 빼면 별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땐 흐린 날씨였고 음악과 시가 넘쳐났던 곳이었기에, 그리고 옆구리를 따뜻하게 할 인연이 없었기에 머릿 속에서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를 생각나게 한 곳이었다.(내 머릿속은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외국을 여행하면서 그런생각이 들게 만들까 ㅋㅋㅋ)

 브라티슬라바는 공포영화 호스텔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영화속 이야기와는 달리 고요하고 아기자기한 곳이었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영화 속 이야기는 모두 허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영어에도 능숙했다. 그리고 하루는 중국 여자아이와 함께 달콤한 여행스케치를 그렸던 달달한 기억만 남았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크라쿠프는 이제보니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고 물가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유럽여행에 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은 곳이다. 3년 전엔 독일 출신의 앵벌이에게 거액을 털린 기분나쁜 기억이 있었지만 이번 여행땐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하면서 3년 전에 맺힌 한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 시원한 기억만 남았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바르샤바는 여전히 우울하고 딱딱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당최 필자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마그달레나를 만나러 간건데 비록 그녀는 만나지 못했지만 꿩대신 닭인 폴란드여성 말비나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 비록 우크라이나로 가는 기차를 놓쳐서 노숙을 했지만 그 노숙도 나름 좋은 추억이 되었고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우크라이나는 필자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페북에서만 연락을 하고 지낸 밥형의 친구 에베니저 형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기쁨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그 형과 타냐와 한 번에 같이 만난 것이었다. 타냐와의 재회도 큰 기쁨이지만 더 큰 기쁨은 그녀의 남편, 그녀의 친구들과 끈끈한 인연이 된 것이었다. 키예프에서 안나와의 재회 또한 큰 기쁨이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그녀였는데 절친을 또다시 보게 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과 보람이었던 것이다. 이리나의 출산소식은 내게 기쁨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주었다. 그녀의 아기가 새로운 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기쁨이 됐지만 그녀의 아기가 나와 그녀의 재회를 막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유럽의 마지막 밤은 내게 큰 환희이자 기쁨이 된 날이었다. 카쨔 그녀는 나의 허전한 옆구리를 따뜻하게 해줬고 그녀의 싱그런 미소는 내 마음을 훔쳤고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운 모습은 내 두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아직도 내 맘속엔 천사같은 카쨔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만약 꿈에 그렸던 러시아 횡단을 이뤘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더 큰 행복을 찾게 될지 이보다 덜 할지 예측은 불가능하겠지만 분명한 건 몽골 선교때 만났던 울찌누나와 재회가 가능했을거고 엄청난 거리를 횡단했다는 성취감 속에서 자신있게 살았을 것이다. 이제는 사회로 돌아가서 졸업도 빨리하고 취업도 해야되기에 그 꿈은 접어야되지만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다. 언젠가 돈 많이 모아서 직장을 사직하거나 자식들이 장성하고 은퇴하게 될 때, 그 꿈은 꼭 이룰 것이다.


 상념이 끝나갈 무렵에 하늘은 점차 밝아지고 있었고 비행기는 거대한 대륙에 거의 다와가고 있었다. 잠시 후, 비행기는 힘차게 활주로를 달리다가 북경수도공항에 착륙했다. 비록 파란만장한 유럽횡단여행은 끝을 맺었지만 칭기스칸 파워트립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여기가 드디어 필자가 꿈에 그렸던 러시아 육로횡단여행의 시작점으로 설정했던 북경이다!

 자, 가자, 마지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으로 입국심사장을 향해 걸어갔다.